가족과 함께한 런던, 이탈리아 기행도 꿈만 같이 지나갔다.
정말 어제부터 같이 있었던 것 같고, 내일 같이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사실 공항에서 눈물 찔끔 하려는데,
호적메이트가 비행기에서 세수한다고 갖고간 화장품 때문에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뒤에서 어떤 외국인 커플이 오열하며 이별하고 있었다.
배낭을 맨 여자는 눈물로 젖은 얼굴로 앞을 보지 못하고 Fast-track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도 되지 않아 " 나 여기 아니래 " 하며 친정식구가 갔던 보통 출입국심사 줄을 향해 갔다.
각설하고,
엄마, 동생과 함께한 여행은 정말 행복했다.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여행 초반에 엄마한테 짜증을 너무 많이 낸 것이다.
우리 엄마 영어도 잘하지 못하고, 무릎도 안좋으니까, 장거리 비행에다가 유럽은 너무 힘들겠지?
걱정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엄마는 정말로 씩씩하고 재밌게 여행지를 누비고 다녔다.
2019년에, 엄마랑 익년도에 꼭 이탈리아를 가자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지구 전역을 휩쓸면서 이탈리아행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코로나 이후에는 나의 결혼으로 엄마의 유럽행은 요원하게 멀어져갔다.
그리고 약속한지 5년이 지나 엄마와 돌아다닌 이탈리아는 정말 아름다웠고, 행복했다.
바티칸에서 진심을 담은 편지를 한국으로 보내놓으려고 했는데,
엽서가 너무 공개적이라 편지를 따로 쓸 수 밖에 없었다.
항상 내가 누리는 것들을 혼자서 이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고, 갈 길도 멀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생각보다 아주 자주,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인 엄마의 노력과 사랑을 잊는 것 같아서,
아주 후회할 것 같고 마음이 아프다.
나는 작은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엄마는 어린 딸에게 항상 자기 직업을 가진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도 일찍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해서,
나는 정말 쥐어박을 만큼 이상한 꿈들을 나열하곤 했다.
고고학자, 철학자, 외계인 통역사, 고생물학자, 법의학자 등등
돈을 벌겠다는 꿈과는 아주 먼, 현학적인 향을 풍기는 직업을 찾아 헤맸다.
그러면 엄마는 단 한 번도 그걸 나무라지 않고, 엄마는 너의 꿈을 응원한다며 북돋아주곤했다.
역사와 관련된 일은 절대 안된다고 하던 아빠 때문에, 울적해 하던 나를 보고 엄마는,
시험이 끝난 어느날 아빠 몰래 그림자료가 잔뜩 들어있는 예쁜 Egyptology 책을 사다주기도 했다.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꼭 보여줄 책)
매해 새로운 교실에서 자기 사물함을 꾸미려면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적어야했다.
친구들은 으레, 여자는 학교를 졸업하면 엄마가 되어야한다고, 여자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며
내 장래희망에 의아해했다.
그건 단순히 학교에서 낸 숙제에 불과하지, 정말로 이루라고 써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세상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나를 나무랐던 친구들 역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
세월이 지나,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직업을 가진 여성이 되라 했느냐고.
우리 엄마는 나를 가지느라 싱글로서의 사회생활을 1년 남짓 누려보았다.
엄마의 대학 동창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엄마는 정말 엉뚱하고 꿈이 많은 소녀였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름다운 20대를 아이를 키우며 보내다가,
자기 삶을 찾고 싶어서, 아이들과 남편이 잠든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했다.
그리고 현실에 부딪힐 무렵, 엄마또래의 미혼 여성이 이웃으로 이사를 왔다.
그녀는 의사였고, 그 시절 드물게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여성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딸들에게, 절대로 직업을 잃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이 되라고, 세뇌하다시피 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바라던 대로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어릴 때 바라던 꿈은 아니었지만, 평생직장을 가진 사람이 되었고,
엄마가 바라던 대로 젊은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충분히 누려보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결혼했다.
10년 뒤에 세상이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얼하고 있을지 상상도 못하겠지만,
그 때에도 나는 엄마가 한 때 바라던 꿈을 같이 이뤄가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자주 잊지 말고,
대충살지 말아야지.
우리엄마 평생 예쁘고 젊을 줄 알았는데,
벌써 환갑이라니 너무해

P.S 물론, 이기적인 언니에 가려져서 남몰래 희생을 많이 했던 호적메이트도 소중

친정식구들이 돌아갈 때 즈음 시험 하나랑 과제가 겹쳐서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너무 아쉽다.
호적메이트😈 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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